본문 바로가기
연애인 이야기/연애인 정보

송해 | 宋海 | Song Hae | 최고령 MC 송해 별세 향년 95세

by - 하루살이 - 2022. 6. 8.
728x90
반응형

 

본명
송복희(宋福熙)
출생
1927년 4월 27일
황해도 재령군 재령면
(現 황해남도 재령군 재령읍)
사망
2022년 6월 8일 오전 8시 45분 (향년 95세)
서울특별시 강남구 도곡동
묘소
대구광역시 달성군 옥포읍 기세리 546
국적
대한민국
본관
여산 송씨
신체
158cm, 54kg, 250mm, A형
취미
운동, 목욕
좋아하는 음식
소주, 우거지 국밥, 소고기
가족
아내 석옥이(1934.3.3~2018.1.20.)
장녀 송숙경, 차녀 송숙연, 장남 송창진(1966~1986)
사위 김학수, 양희천
외손주 김혜림, 양정우, 양정하
학력
황해도 해주예술학교 성악과
병역
 대한민국 육군 통신병
참전
6.25 전쟁
종교
미상
데뷔
1955년 창공악극단 (데뷔 67년차)
상훈
은관문화훈장(2014년)
기네스 등재(2022년: ‘최고령 TV 음악 경연 프로그램 진행자’(Oldest TV music talent show host))
대한민국의 코미디언 출신 방송인이다. 그의 삶 자체가 살아있는 한국 근현대사여서인지, 송해 관련 인터뷰나 많은 프로그램에서도 다뤄졌는데, 1927년 4월 27일 생으로 본명은 송복희. 일제강점기에 태어났기에 창씨개명을 했는데, 그것도 福복 자라고 한다.

대한민국 방송계 역사의 산증인이라 할 수 있다. 젊은 세대에게도 원조 국민 MC로 불릴 정도로 인지도가 높은 인물이며, 방송계의 모든 사람들이 선생님이라는 호칭을 붙이는 게 너무나 당연한 일로, 현재 남아 있는 방송인 가운데 송해를 편하게 부를 수 있는 사람이 없다. 그나마 송해 다음으로 방송계 큰어른인 이순재가 형님이라고 부를 정도다. 이순재보다도 7살이나 위인데다 데뷔도 1년 빠르기 때문에 역시 그에게도 선배인 것은 마찬가지다.

본업은 코미디언으로, 웃으면 복이와요, 고전 유모어극장, 유머 1번지, 코미디 하이웨이 등에 출연했었다. 1980년대 중반 이후부터 코미디언 활동은 하지 않고 있으며 오랫동안 MC로 활약하고 있었다. 그러나 코로나 사태 이후로 전국노래자랑이 휴식기를 가지면서 활동이 뜸해졌다가 2022년 프로그램이 재개한 이후로 건강 문제로 MC 자리에서 하차했다.

2022년 5월 23일에 최고령 진행자로 기네스북에 등재되었다.

데뷔 이전 (1927~1954)

고향은 황해도 재령군이며, 어릴 적부터 끼 많은 개구쟁이로 동네에서 꽤 유명했다고 전해진다. 아버지, 어머니, 형, 여동생이 있었다고 한다. 형은 자신이 해주예술학교에 입학할 즈음에 아버지의 반대를 무릅쓰고 자신의 갈 길을 가겠다고 집을 나갔다고 한다.

1949년 황해도 해주예술전문학교에 만 22세 나이로 입학해서 성악을 공부하였다. 이는 그가 월남 후 남한에서 전공을 살려 방송인의 삶을 산 계기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본인의 회고에 따르면, 본래는 '창공악극단'이란 이름의 순회 악단에서 가수를 했는데, 악단 공연의 특성상 진행을 하면서 입담을 살려 분위기를 띄우는 역할도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MC 경험을 쌓게 되었다고 한다.

다만, 학업은 오래 가지 못하고, 이듬해 6.25 전쟁이 터지자 초기에는 고향에 머물렀는데, 당시 구월산 일대에 활동하던 공산당 유격대의 모병을 피하려고 인근 마을에 숨었다가 돌아오기를 반복했다. 1.4 후퇴가 벌어지던 때에 다시 나가려는데, 당시 어머니가 "얘야, 이번엔 조심해라."라는 말을 들었다고 한다. 이에 "걱정 마세요."라면서 어머니와 여동생을 두고 나왔는데, 그것이 마지막 인사였다. 바로, 북한 인민군의 진주로 인해 재령에서 해주, 해주에서 연평도로 피란을 떠나 연평도에서 미 군함에 타면서 부산까지 내려왔다. 이때 실향민으로 바닷길을 건너오면서부터 지금의 이름, 즉, 바다 해(海) 자를 예명으로 쓰기로 결정했다고 한다.

피난선이 도착한 부산항에서 그는 앞 사람만 따라다니다가 군에 입대해서 통신병으로 복무하면서 1953년 7월 27일 휴전 메시지를 직접 타전하기도 하였다. 그 때 당시 쓰던 모스 부호를 아직까지도 알고 있다. 그리고 당시 군대 선임이 혼자였던 그에게 여동생을 소개시켜줬는데, 그녀가 바로 그의 부인인 석옥이였다.

데뷔 이후 (1955~)

군 제대 이후에는 '창공악극단'에서 가수로서 연예 활동을 시작했으며, TV 방송이 시작한 후에는 여러 방송사를 넘나들면서 조연급 코미디언으로 대활약하였는데, 선배 코미디언인 박시명과 콤비를 이루거나 콤비를 하지 않을 때엔 똑똑한 고학력자를 풍자한 캐릭터를 주로 연기했다. 포지션은 만자이 용어로 츳코미다.  배삼룡, 구봉서와 같이 출연한 '그 시절 그 쑈'의 영상, 해당 영상은 2002년에 연기하였다. 여러 방송사들 중에서 특히, KBS에서 가장 오래 활동한 듯하다.

능수능란한 화술과 진행능력, 그리고 정확한 발음을 가진 그는 동양방송이 매일 아침 AM 라디오 채널을 통해 방송하던 생활정보 프로그램 '가로수를 누비며'의 진행을 맡으면서 운전자들 사이에서 큰 인기를 누렸다. 특히 이때 운전자들이 교통 통신원을 조직하여 그 제보를 활용한 시스템은 현재도 각종 라디오 프로그램이나 교통방송에서 쓰이고 있다. 다만, 1986년 아들의 오토바이 교통사고 이후 그 충격으로 한동안 모든 방송 활동을 중단하면서 17년 동안 맡아온 진행자 자리에서 내려오게 된다.

아들을 먼저 보낸 충격을 잊기 위해서 참여한 프로그램이 1988년부터 2022년까지 MC로 활약한 전국노래자랑으로, 역대 한국 현역 방송인 역사상 가장 장수한 최연장자이며 이 기록을 근거로 기네스북에 등재되었다. 또한 전국노래자랑을 33년 동안 진행하여 국내 단일 TV 프로그램 최장수 진행자를 기록했다. 1994년에 5월에 하차했다가 같은 해 10월 16일에 복귀했다는 점을 감안하여, 전국노래자랑 진행 기간을 이 복귀 시점부터 계산하더라도 이미 25년을 훌쩍 넘겼으므로 국내 단일 TV 프로그램 '연속 진행' 최장수 기록까지 보유하고 있다.

말 그대로 전국 노래자랑이다보니 괴짜 참가자들도 한두 번씩 출연하기 마련인데, 가장 유명한 사례로 2010년에 온 몸에 벌들을 붙이고 나온 양봉업자가 있었다. 이때 송해가 보여준 대처 능력은 관록의 극치임과 동시에 대인배 인증이라고 할 수 있다. 저 방송 직후에 KBS 시청자 게시판은 송해 선생님을 찬양하는 글과 저런 사람을 왜 내보냈냐는 글이 반반이었다.

특히, 어른들에게 인기가 높으며, 80살이 돼도 90살이 돼도 여전히 "송해 오빠"로 불리는 자타가 인정하는 "일요일의 남자"이면서, 이 외에 앨범도 내고 개인 콘서트를 연 적도 있을 만큼 노래 실력도 수준급이다. 전국 노래자랑에서 초대 가수 오승근의 "내 나이가 어때서" 를 열창하는 송해

이러한 꾸준함은 송해에 대한 후대의 평가도 높였다. 원래 송해는 비슷한 연배의 구봉서, 배삼룡, 서영춘, 곽규석 등에 가려진 인물이었다. 그러나 그는 전국노래자랑에서 사람들과 직접 살을 맞대며 90세를 넘기면서까지 활약하였고, 별다른 잡음도 없이 생활하여서, 이제는 그들에게 가려진 2/3인자가 아닌 어엿한 1인자로서 사람들에게 기억되게 되었다.

KBS 대화의 희열뿐만 아니라 프로그램에 출연할 때마다 밝히기를, 생애 마지막 전국노래자랑을 자신의 고향인 황해도 재령군이나 학업을 했던 해주시에서 하고 싶다고 하였으며, 이젠 고인이 되었을 자신의 어머니를 초상화로 뵙기도 하였다. MBN에서 방영되었던 특집 프로그램인 '송해야 고향 가자'에서, 자신의 고향인 황해도 재령군 쪽으로 가기 위해 남북체육교류협회의 남북 응원단으로 합류하면 북한으로 갈 수 있다고 했지만, 방송 당시(2019년) 또 다시 남북관계가 틀어지면서 남북체육교류협회 경기도 9월 말로 연기되고, 엎친데 덮친 격으로 2020년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의 창궐로 방북이 더욱 힘들어지게 되었다.

2010년대 이후부터, 그의 건강과 관련되어 보도가 되고 있는 건 사실이다. 이른바 이순재와 함께 실검에 이름만 떠도 전국민 가슴이 철렁 하는 방송인이었다.

2012년 9월 22일 전국노래자랑 녹화 촬영 때 돌연 불참을 하였다. 이유는 바로 피로 누적. 그것도 녹화 때 리허설을 하다가 피로 누적과 통증 호소 등으로 바로 병원으로 이송되었다고 한다. 일각에서는 80대의 최고령인 점 때문에 와병설이 있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도 있었지만 다행히 건강에는 지장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당시 85세라는 고령의 나이 때문에 건강에 대한 불안은 여전히 주목받을 일. 해당 녹화 진행은 전국노래자랑의 단골 심사위원인 작곡가 이호섭이 하였다. 그리고 추석 특집 외국인 노래자랑에도 불참하여 허참이 진행하였다. 2012년 11월 18일에도 개인 사정으로 불참하고, 이호섭이 녹화를 진행하였으나, 다음 주 진행에는 문제가 없다고 한다.

2018년 1월 20일에 아내를 지병으로 떠나보냈다. 부부가 같이 입원했는데, 아내가 먼저 가 버린 것이다. 발인식에서 "붙잡으면 무슨 소용 있나. 조금 먼저 갈 따름이야. 열심히 애들 보살필 테니까 마음 놓고"라며 비통한 심경을 전했고, 이에 네티즌들은 안타까움을 자아냈다.

2019년 12월 31일 다시 입원했는데, 처음에는 폐렴으로 알려졌지만, 이후 감기몸살로 보도되었다. 연합뉴스 이 때문에 전국노래자랑 측은 2020년 1월 12일 설 특집 녹화는 다른 MC가 대신 진행할 예정이라고 한다.  이를 두고 네티즌들은 올해 전국노래자랑의 32년을 맞는 송해의 빠른 쾌차를 바라는 댓글이 올라가고 있다. 이후 무사히 회복하여 퇴원했다고 한다. 다만, 전국노래자랑 지역 녹화는 코로나19 확산으로 아직도 시작하지 못한 상태로, 2020년 3월 1일 ~ 2020년 6월 28일까지는 스페셜 방송 다시보기 형식으로 대체되었으며, 2020년 7월 5일부터 다시 하고 있는 녹화는 지방 촬영 대신 스튜디오에서 연령별 노래자랑과 특별판으로 대체 중이다.

2021년 9월 13일, 유튜브 근황올림픽에 출연해 근황을 알렸다. 7 kg 야윈 모습으로 등장하여 영화 송해 1927을 홍보하는 시간을 가졌다.

2022년 1월 31일에는 KBS 2TV에서 그의 일대기를 다룬 뮤지컬인 '여러분 고맙습니다 송해'가 방영되었다. 공교롭게도 다음날인 2월 1일에 평소 송해가 본인 다음으로 전국노래자랑 진행을 맡으면 좋겠다고 밝히던 허참이 간암으로 72세에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2022년에는 백신을 3차까지 접종했으나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았다.  이에 많은 네티즌이 걱정하는 반응을 보였다.

다행히 걱정이 무색하다는 듯 4월부터 다시 정상적으로 전국노래자랑을 녹화하며 MC 활동을 재개한다는 소식이 떴다. 송해, ‘전국노래자랑’ MC 복귀 “9일 녹화 참여”

2022년 5월 14일 오후에 서울 아산병원에 입원했다.

2022년 5월 17일 이데일리 보도에 따르면 송해 스스로 “더 이상 ‘전국노래자랑’ 진행을 맡는 게 어렵지 않겠느냐”라는 뜻을 프로그램 제작진에 밝혔다고 한다.


사망

2022년 6월 8일 오전 8시경 노환으로 쓰러져 끝내 일어나지 못하고 향년 95세를 일기로 사망하였다.

식사를 하러 올 시간이 지나 인근에 사는 딸이 자택으로 찾아갔으며, 이후 자택 화장실에 쓰러져 있던 송해를 발견해 신고하였다.  소방당국은 오전 8시 19분쯤 유족의 신고를 받고 출동했으나 송해는 이미 사망한 상태였다고 한다.

이후 약 1시간 뒤인 오전 9시 39분부터 사망 소식이 기사화되기 시작했다.

이미 지난 5월 건강 이상으로 병원에 입원을 했고 5월 23일 기네스 세계 기록 등재 당시 인터뷰에서 이미 많이 수척해진 상태인 데다가 사망 4일 전인 6월 4일 전국노래자랑이 2년 만에 야외 녹화가 재개됐는데 장거리 이동 등의 이유로 불참했을 정도로 이미 건강이 매우 안 좋았던 것으로 보인다.

빈소는 서울대학교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되며, 장례 형식은 대한민국방송코미디언협회장으로 3일간 치러진다.

한편 KBS측에서는 송해의 건강이 회복되는대로 전국노래자랑 녹화 방송 참가에 대해서 본인이 의사를 밝힌다면 건강 상태 등을 고려하여서 이에 대한 검토와 계획을 하였던 것으로 알려졌지만 끝내 고인이 됨에 따라 결국 무산되었다. 그리고 송해 선생의 별세에 맞춰서 6월 8일 밤 10시에 송해 선생 추모 특집 '여러분 고맙습니다 송해' 를 편성하기로 하고 12일에 방송되는 전국노래자랑도 송해 선생 추모 특집으로 편성하게 된다고 밝혔다.

송해는 부인 고향인 대구 달성군에 부부가 함께 그곳에 묻히고 싶다는 바람을 생전에 밝혔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달성군은 송해공원을 조성했으며 지난해 12월 '송해 기념관'을 개관했다.

달성군 옥포읍 송해기념관 전경. 사진=달성군청

유족으로는 두 딸이 있다. 부인 석옥이 씨2018년 먼저 세상을 떠났고, 아들은 1994년 교통사고로 목숨을 잃었다.

장례대한민국방송코미디언협회장으로 치러진다.

빈소서울대병원 장례식장 2·3호실에 마련되며, 이날 저녁부터 조문을 받는다. 발인은 10일이다.

728x90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