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정보 이야기/유용한 자료

국경일 개천절 의미 대체공휴일 단군조선 기념일 환인 환웅 향산제 노래 음력 양력 뜻 유래 정의 하늘이 열린날

by - 하루살이 - 2022. 10. 4.
728x90
반응형

개천절

開天節 | Gaecheonjeol

개천절 기원전 2333년 10월 3일

단기 제4354년

개천절(開天節)은 대한민국의 국경일로, 의미 자체는 "하늘이 열린 날"이라는 뜻이며 한반도 역사에서 첫 국가인 고조선을 기념하는 날이다.

날짜는 10월 3일로, 한국의 법정 공휴일로 지정되어 있다. 원래는 음력 10월 3일에 기념했다가 지금은 양력 10월 3일로 바꾸었다.

개천절 연휴

연도별 리스트

1958년, 1969년, 1975년, 1980년, 1986년, 1997년, 2003년, 2008년, 2014년, 2042년, 2053년, 2059년: 10월 3일 (금) ~ 10월 5일 (일)

1955년, 1966년, (1977년, 1983년, 1988년), 1994년, 2005년, 2011년, 2016년, 2022년, 2033년: 10월 1일 (토) ~ 10월 3일 (월)

1989년: 10월 1일 (일) ~ 10월 3일 (화) - 익일휴무제로 인한 연휴가 생성되었다.

2009년: 10월 2일 (금) ~ 10월 4일 (일) - 추석 연휴와 겹친다.

2017년: 9월 30일 (토) ~ 10월 9일 (월) - 개천절 연휴, 추석 연휴, 한글날 연휴가 하나로 합쳐졌다.

2020년: 9월 30일 (수) ~ 10월 4일 (일) - 추석 연휴와 겹친다. (연휴 전날은 9월 29일)

2021년: 10월 2일 (토) ~ 10월 4일 (월) - 추석 연휴와 겹치지 않은 개천절로 인한 대체 휴일이 처음으로 적용된다. 만약 그 상태에서 추석 연휴와 하루라도 겹치면 10월 5일 (화), 10월 6일 (수), 10월 7일 (목) 중에서 하나 이상의 대체휴일이 추가로 생긴다.

2025년: 10월 3일 (금) ~ 10월 9일 (목) - 개천절 연휴, 추석 연휴, 한글날이 하나로 합쳐졌다.

2028년: 9월 30일 (토) ~ 10월 5일 (목) - 추석 연휴와 겹친다.

2031년: 9월 30일 (화) ~ 10월 5일 (일) - 추석 연휴와 연달아 있다.

2044년: 10월 1일 (토) ~ 10월 6일 (목) - 추석 연휴와 연달아 있다.

개천절 노래

1. 우리가 물이라면 새암이 있고

우리가 나무라면 뿌리가 있다

이 나라 한아버님은 단군이시니

이 나라 한아버님은 단군이시니

2. 백두산 높은 터의 부자요 부부

성인의 자취따라 하늘이 텄다

이날이 시월상달의 초사흘이니

이날이 시월상달의 초사흘이니

3. 오래다 멀다해도 줄기는 하나

다시 필 단쪽잎에 삼천리 곱다

잘 받아 빛내오리다 맹세하노니

잘 받아 빛내오리다 맹세하노니

고조선과의 관련성

단군의 고조선 건국을 기념하는 날이지만, 역사학적으로 10월 3일이 고조선의 건국일인 것은 아니다.

고조선의 정확한 건국일자는 불명이며, 실제로는 다른 청동기 시대 국가처럼 부족 사회에서 자연스럽게 이행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따라서 10월 3일 자체와 고조선 사이의 실제 관련성은 없다고 할 수 있다.

다만 대종교의 관점에서는 경전인 《삼일신고》에서 "한배님이 갑자년 10월 3일 태백산에 강림하여 125년간 교화시대를 지내고 무진년(戊辰年) 10월 3일부터 치화(治化)를 시작했다."는 문장을 근거로 하는데, 이를 서기로 환산하면 '기원전 2457년(갑자)에 강림했고 기원전 2333년(무진)부터 치화를 했다'는 의미가 된다.

'무진년(기원전 2333년)'이라는 일자는 1281년 편찬된 삼국유사와 1485년 편찬된 《동국통감》에도 등장하나, 그 내용은 중국 신화의 요 임금이나 순 임금 같은 불안정한 기록에 연유하고 있어 일자를 신뢰하기 어렵다.

전근대의 역사

전통적으로 음력 10월은 특별한 달로 여겨졌다. 음력 10월은 동짓달(음력 11월) 바로 전 달로, 12간지로 따지면 마지막 해(亥)에 해당한다.

한 해의 마지막이면서, 이 즈음이면 농사도 끝나 한 해를 마무리하는 느낌도 강하다.

이 때는 민간에서도 상달이라 하여 집집마다 고사를 지내는 풍습이 있는데, 현대에도 이 풍속이 아직 살아있다.

대종교 이전에 전국적으로 10월 3일을 단군이나 개천(또는 민족의 개창)과 연결지어 생각한 사례는 거의 발견되지 않는다.

다만 조선 후기 일부 지방에 '음력 10월 3일에 단군에게 제사 지내는 향산제라는 풍속이 있다'는 기록이 있고, 19세기 문헌인 무당내력이 "상원갑자 10월 3일에 신인이 박달수 아래로 내려오니 단군이라 한다. 신교(神敎)를 세우고 백성들을 가르쳤다."라는 구절이 있으며, 김염백(金廉伯)이 평안도에서 1890년대에 일으킨 단군신앙 집단에서도 음력 10월 3일을 단군의 탄생일로 여겼다.

이러한 점을 볼 때 조선 후기에 평안도나 함경도 등 한반도 북부에서 단군과 음력 10월 3일을 연결짓는 민간신앙이나 의식이 어느 정도 있었던 듯하다.

조선왕조실록 태조실록 태조 1년(1392년)의 8월 11일 2번째에는 "조선의 단군(檀君)은 동방(東方)에서 처음으로 천명(天命)을 받은 임금", "평양부(平壤府)로 하여금 때에 따라 제사를 드리게 할 것입니다."라는 언급이 있다.

조선 왕조의 제사예법에서는 상순, 즉 1일부터 10일까지는 존귀한 제사를 드리는 날, 중순은 사대부, 하순은 그 이하가 제사를 지내는 날로 삼았다. 왕실 제사 예법에도 상순에 드리도록 정한 제사가 많다.

또, 고구려의 동맹, 동예의 무천 등 옛 제천 행사도 10월에 열렸다.

아마도 나철은 단군과 10월 3일을 연결짓던 조선 북방 지역의 민간신앙이나 기존의 고사 등 전통을 참조했을 것이다.

728x90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