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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이야기/이슈 - 사건

박진성 시인 사망...사건설명 및 마지막 글...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by - 하루살이 - 2022. 3.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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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성 시인의 사망소식이 그의 부친이 남긴 글로 전해 졌습니다.

그간 몇 번의 극단적 선택 암시 글, 시도가 있었는데 결국 그 선택을 하셨나 봅니다. 안타깝습니다.

박진성 시인은 미투사건에 연관되어 억울함을 호소해왔고, 온라인상에서 찬반 양론이 극한적으로 대립하기도 했습니다. 사건의 시작은 2016년인데 2022년 현재까지 응원과 조롱이 교차하고 있습니다. 정치 이슈, 젠더 이슈가 있을 때면 항상 논란이 되곤 했고, 이에 대해 극심한 스트레스도 느꼈으리라 보여 집니다.

게다가 이번 20대 대선 상황에서는 더욱 심해졌을 겁니다.

박진성 시인 1

1. 박진성 시인 관련 사건 요약(기사 요약)

나무위키의 정보입니다.

<생애>
- 출생: 1978년 충청남도 연기군(현 세종특별자치시) 금남면 용포리
- 학력: 한일고등학교, 고려대학교 서양사학과 졸업
- 등단: 2001년 《현대시》에 시를 발표하며 시단에 등장
- 수상: 2014년 제8회 동료들이 뽑은 올해의 젊은 시인상을 수상
2015년 제7회 시작 작품상을 수상
<사건>
2016년 여러 여성의 폭로로 성폭력, 성희롱 범죄 혐의가 제기됨.
2017년 폭로자 2인에 대한 성폭력 혐의에 대해서 무혐의를 받고 해당인들에 대해선 무고 및 허위 사실 유포 혐의가 인정. 트위터에서 심적 스트레스를 이기지 못하고 자살을 시도하나 실패하고 의식을 회복하였다고 주장하였음. 구체적인 사실 관계는 확인되지 않음.
2018년 7월, 자신의 성폭력, 성희롱 혐의를 보도한 언론인 한국일보와 기사를 쓴 황수현 기자와의 민사소송에서 1심 승리. 12월에 합의하는 데 성공해 2심 종료. 한국일보는 2019년 1월 30일 박진성 시인에게 제기되었던 모든 의혹에 대해 정정을 하는 정정보도문을 내보냄.
2019년 폭로자 중 1인의 주민등록증을 SNS에 공개함
2021년 5월 폭로자 중 1인에게 명예훼손에 따른 손해배상을 청구하였으나 기각됨. 도리어 피고의 반소가 받아들여짐. 성희롱과 개인정보 유출 등에 대해 1,100만원을 배상하라는 판결이 내려짐. 이 과정에서 재판부는 피고가 제출한 문자 내역을 통해 박진성 시인이 성희롱 발언을 하였음을 인정함.
2022년 3월 14일, 유서를 남긴 채 자살함. 부친이 SNS를 통해 부고를 알리고 유서는 공개하지 않기로 함.

금일 나온 기사들의 주요 내용입니다.

.....(중략)

박씨는 2016년 문단 내 ‘미투’ 가해자로 지목되는 등 여러 송사에 휘말려 정신적 고통을 호소해왔다.

당시 피해를 주장한 폭로자는 2015년 박씨에게 ‘온라인 시 강습’을 받은 미성년자 수강생 김모씨다. 박씨는 검찰 조사에서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 이후 박씨는 김씨를 상대로 ‘허위사실 적시로 명예훼손 당했다’는 취지의 소송을 제기했으나 재판부는 김씨의 손을 들어줬다. 지난해 5월 재판부는 “박씨가 제출한 증거만으로 이 사건이 허위사실이라고 인정하기 부족하며 이를 인정할 증거가 없다”고 했다. 이에 박씨는 항소를 제기했다.

박씨는 후배 시인 A씨가 박씨를 상대로 낸 민사소송에서도 A씨와 A씨 배우자에게 각각 800만원과 200만원을 배상하라는 판결을 받았다. 앞서 박씨는 A씨가 2016년 ‘문예중앙’ 겨울호에 문단 내 성폭력을 다룬 산문을 올렸는데, 이를 두고 박씨는 해당 글 속 인물이 자신이며 A씨와 자신이 연인관계였다는 주장을 했다. 이에 A씨는 박씨의 허위사실 적시로 명예가 훼손됐다는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냈고, 재판부는 주변인들 증언을 종합해봤을 때 A씨와 연인관계였다는 박씨의 주장이 허위사실에 해당된다고 봤다.

이 과정에서 박씨는 2018년과 2020년 극단적 선택을 암시하는 글을 인터넷에 올리고 잠적했다가 무사히 발견됐다. 박씨는 지난 13일까지도 악성 댓글이나 자신을 향한 모욕성 게시물에 대한 고통을 호소하는 글을 소셜미디어에 올려왔다.

각종뉴스

2. 박진성 시인 페이스북의 최근 글

박진성 시인 2

기사를 보고 박진성 시인 페이스북에 가보니 최근까지도 활발하게 의견을 남겨 왔습니다. 특히 대선 선거운동 시기, 3월 13일의 개표상황 때도 글이 올라 왔습니다.

그런데 거슬러 올라가 보니 여전히 악성글들이 많이 보내지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거의 폐급인 글도 계속 오고 있었네요

저렇게 보낸 놈은 사람새끼인지... 보통은 일베들이 대부분임

오전에 위와 같은 글을 올린 후 같은날 오후에는 아래와 같이 장문의 설명을 하게 됩니다.

(눈 안좋으신 분들도 있어서 그림 아래에 텍스트로도 남겨 드리겠습니다.)

"어려웠을 떄 2번남들이 페미랑 싸우는거 도와줬더니 2번남을 왜 욕하냐" 에 대한 장문의 답변

위 그림이 잘 안보이시는 분이 있을테니 텍스트로도 아래에 전해 드립니다.

(박진성 시인이 하고 싶은 얘기였으니 전해드립니다)

보수성향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저를 향한 조리돌림이 선을 넘는 수준에 이르렀다고 판단, 공개적으로 답변을 드립니다. 아니 제가 뭐 정치인도 아니고 제가 뭐라고 저를 타깃 삼아서 이러시는 줄 모르겠지만, 어쨌든, 이러한 댓글로 의견을 주셨습니다.

“아재는 미투 당할 때, 2번남들이 도와주고 변호해주고 응원해주고 페미들과 대신 싸워주고, 1번남 1번녀들이 공개조롱하고 마냐사냥하고 다녔는데, 정치성향 다르다고 2번남을 욕해요? 참 은혜도 모르고 배은망덕하네요. 이젠 페미들과 손잡고 1번남 하시는거예요? 사람 속마음은 참... 모르겠다”

저의 답변입니다. 일단 팩트체크부터. (1번남, 1번녀, 2번남, 2번녀. 참 불편한 용어들이지만 대체 용어가 마땅히 없어서 그대로 쓰겠습니다.) 제가 성폭력 무고로 곤경에 처했을 때 이런저런 커뮤니티에서 많이 도와주신 거, 잘 알고 있습니다. “2번남들이 도와주고 변호해주고 응원해주었다”, 라는 것은 일종의 착시 현상인 것이 2017년 당시에는 젠더 갈등이 최고조로 달해 있을 때였고 저를 응원해주던 많은 분들 중에는 ‘물론’ “1번남 1번녀”들도 많습니다. 아니, 사실 자신의 정체성을 1번이니 2번이니 규정하지 않는 분들이 대부분이었지요. 저는 그게 정상적인 사회라고 생각합니다. 그때 응원을 해주시다가 2022년 현재에도 연락을 하고 지내는 20대 분들은 (굳이 나누자면) )대부분 1번남, 1번녀 분들입니다. 그러니까 이 질문은 잘못 된 팩트에서 출발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두 번째 팩트 체크. “1번남 1번녀들이 공개조롱하고 마냐사냥하고 다녔”다, 라는 주장은 전혀 사실과 다릅니다. 2016년 당시, 저를 옹호해주고 믿어주던 사람들은 전무했으며 저를 가장 악의적으로 조롱하고 비판하던 분들은 2번남들이었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일베였는데 극우 성향의 집단들 특성이 그렇지요. 자신들보다 ‘무엇인가가 낮다’, 라고 판단이 되면 린치를 가하고 자신들끼리 조롱하고 인격 살해 수준으로 짓밟아 놓는 것이 극우 성향 집단들의 특징입니다. 그러니까 ‘일베’라는 무리들은 어느날 갑자기 튀어나온 특수한 집단이 아니라 역사의 비극적인 반복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커뮤니티의 특수성상 하나의 여론으로 커뮤니티 전체가 수렴되기 마련이고 저는 그때 당시 그냥 모든 커뮤니티와 모든 SNS에서 “죽일 놈”이었습니다. 틀린 질문을 해 놓고 저를 원망하면 드릴 말씀은 사실 그렇게 많지 않습니다.

세 번째. 소위 “1번남, 1번녀”들에 비해서 “2번남, 2번녀”들은 이 세계를 유난히 단순한 이분법으로 인식합니다. 세계에는 오로지 ‘페미/반페미’만 존재하는 것처럼 그 틀 안에서 모든 것을 해석하려고 하고 인식하려니 무수히 많은 오류들이 발생합니다. 혐오의 전략으로 정권을 잡아서 전쟁까지 일으킨 희대의 독재자들이 수두룩하지요. 히틀러가 그렇습니다. ‘반-유대인’ 정서를 이용하여 정권을 잡았던 히틀러와 ‘여성가족부 폐지’라는 선동으로 소위 ‘2번남’의 표들을 집결하여 자신의 정치에 이용한 윤석열, 이준석은 그 본질이 같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역사적으로 보면 사실 조선시대의 무수한 ‘사화(士禍)’들도 ‘혐오’를 이용하여 상대방을 처절하게 학살하는 패악들이었습니다.)

저는 그 정치인들이 이러한 ‘혐오 전략’으로 무슨 짓을 하게 될까 솔직히 두렵습니다. 그렇다면 소위 ‘2번남’들은 이렇게 물을 수도 있겠지요. 이재명도 ‘n번방을 추적한 불꽃’의 박지현을 이용하여 갈라치기를 하지 않았냐. 그렇지 않습니다. ‘n번방’이라는 희대의 범죄 집단을 아무런 도움 없이 수년에 걸쳐 추적하여 단서를 잡았고 ‘디지털 성폭력’을 공론화시킨 장본인들입니다. 여성가족부를 폐지하겠다, 라는 허울 좋은 명분으로 선동하는 것보다 (실제로 ‘여성가족부’의 ‘여성’ 관련 예산은 채 10프로도 안 되는 현실이고 대부분의 예산은 가족과 청소년 사업 등에 쓰이고 있습니다. 이름만 ‘성평등가족부’ 정도로만 바꾸면 되는 일입니다.) 저는 이 시대가 직면하고 있고 앞으로도 대비해야 할 폭력에 저항하는 일이 훨씬 더 가치 있다고 생각합니다.

(꼰대처럼 들릴 수도 있겠지만} 세상을 더 넓게 보시기 바랍니다. 진보와 보수가 서로 정권을 주고받은 최근 20년 사이, 청년 문제에 누가 더 적극적이었고 청년 복지 등에 누가 더 공을 들여왔었는지 그리고 누가 더 청년들을 아끼는 정책을 펴 왔는지, 극우 유튜버 같은 거 말고 책을 좀 읽어보세요. “시발들아” 운운하면서 욕설을 한 것에 대해서는 저도 사과드리겠습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박진성 시인 블로그 https://blog.naver.com/poetone/222671451840

그리고 나서

이틀뒤인 3월 14일 자정 경.... 박진성 시인의 부친이 남긴 글이 올라왔습니다.

이 소식에 많은 분들이 놀라움, 안타까움, 슬픔을 느끼고 있습니다.

* 더욱 자세히 설명된 논란 및 사건사고 내용은 링크를 참조하시기 바랍니다.(링크)

그리고 하나하나 읽어가는데 발견된 2월의 글을 보면 경제적으로도 어려웠던 것 같습니다.

병원비가 부족해 치료를 못받는 중이라고 합니다.

극단적 선택을 하기까지 경제적으로 정신적으로 수많은 고민과 고통이 있었지 않았을까 조심스레 생각해 봅니다.

3. 박진성 시인의 마지막 기고글

박진성 시인 3

찾아보니 3월 12일 민족정론지라 불리는 '굿모닝충청'에 박진성 시인의 글이 올라와 있습니다.(기사 출처)

박진성 시인의 강아지

[박진성의 비타민 시] 이 슬픔에도 이름이 필요합니다

http://www.goodmorningcc.com/news/articleView.html?idxno=265889

《 싱고 》

십년 넘게 기르던 개가

돌아오지 않았을 때

나는 저무는 태양 속에 있었고

목이 마른 채로 한없는 길을 걸었다

그때부터 그 기분을 싱고, 라 불렀다

싱고는 맛도 냄새도 없지만

물이나 그림자는 아니다

싱고가 뿔 달린 고양이나

수염 난 뱀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적 있지만

아무래도 그건 싱고답지 않은 일

싱고는 너무 작아서

잘 알아보지 못할 때가 많다

풍선껌처럼 심드렁하게 부풀다가

픽 터져서 벽을 타고 흐물흐물 흘러내린다

싱고는 몇 번이고 죽었다 살아난다

아버지가 화를 내면

싱고와 나는 아궁이 앞에 앉아

막대기로 재를 파헤쳐 은박지 조각을 골라냈다

그것은 은단껌을 싸고 있던 것이다

불에 타지 않는 것들을 생각한다

이상하게도

- 신미나, 시집 『싱고, 라고 불렀다』중.

* 2022년 3월 10일 이후, 이런저런 통증들을 호소하는 분들을 많이 봅니다.

20대 대선에서 이재명 후보가 24만 표 차이로 진 날 이후 잠을 하나도 못 잤다는 분도 계시고, 이유 없이 가슴이 뛰고 호흡이 힘들다는 분들도 계시고, 모든 뉴스를 아예 보질 않고 몸져누웠다는 분들도 계십니다. 어떤 거대한 슬픔이 우리를 지나가고 있습니다. 이 슬픔에 제발 누가 이름이라도 좀 붙여주었으면 좋겠습니다. 슬픔을 위로하는 것은 슬픔입니다. 여기, 상실을 다루고 있는 시 한 편을 소개합니다.

시인은 반려견의 슬픔에 대해 “싱고”라는 이름을 붙여주었습니다. 이 세상에 오로지 자신만이 알 수 있는 슬픔이기에, 그 슬픔조차 너무나도 소중하게 간직하고 싶기에 그렇게 한 것 같습니다.

슬픔 하나에 대한 작명이 오롯이 시 한편이 되었습니다. 『싱고, 라고 불렀다』. 이 시집이 처음 나왔을 때 왜 시집 제목을 저렇게 모호하게 지었을까, 의아해 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시를 쓴 사람의 영혼 같은 것이 만져져서 울컥했습니다. “십년 넘게 기르던 개가/ 돌아오지 않았을 때”라고 쓸 때, ‘죽었다’라는 말을 차마 못 쓰고 ‘돌아오지 않았다’라고 쓰는 그 마음을 읽다가 울컥했고, (언어는 이렇게도 조심스러운 것이겠지요.) “싱고는 몇 번이고 죽었다 살아난다”라고 쓸 때의 마음이 물질로 만져지는 것 같아서 또 한 번 울컥했습니다.

(아마도, 이제 좀 그만하라고 지청구하는) “아버지가 화를 내면”, 이제는 “기분”이 된 “싱고”와 나란히 앉아 시인은 개를 묻었던 자리를 살펴봅니다.

“불에 타지 않는 것들을 생각”합니다. 화자는 문득 묻고 싶었을 겁니다. 왜 내가 사랑하던 개 “싱고”는 불에 타서 사라져야 하냐고, 서럽게 묻고 싶었을 겁니다. 그 슬픔을 주장하지 않고, 내세우지 않고, 힘주어 말하지 않고 이 시는, 조용히 그 정황들을 기록합니다.

누군가에겐 사소해 보이는 슬픔과 상처 하나가 그 자신에게는 자신의 전부를 걸어야 하는 슬픔과 상처, 그리고 삶의 내력일 수 있겠습니다. 그래서 시집 제목이 『싱고, 라고 불렀다』가 되었습니다.

“불에 타지 않는 것들을 생각한다”라고 시인은 썼고, 우리는 지금의 이 슬픔을 통과하고 있습니다. 16,147,738개의 동일한 슬픔이 아니라, 하나하나 무늬가 저마다 다른 16,147,738개의 슬픈 사건들입니다.

위로도 준비가 필요합니다. 슬픔의 한가운데를 통과하는 사람에게 건네는 위로는 방향이 ‘그 사람’이 아니라, 대체로 ‘나’ 자신에게로 향해 있습니다. 그건 위로가 아니라 슬픔을 목격하는 자신의 고통을 덜기 위한 도피에 가깝겠습니다.

지금이 위로를 해야 하는 시간인지, 그냥 지켜봐야 하는 시간인지 알 수 없다는 거, 어쩌면 그게 ‘위로’라는 행위 자체의 ‘불구성’인지도 모릅니다. 당신의 곤경과 당신의 절망, 그리고 당신의 슬픔에 대해 아무 말도 하지 않겠다는 건 그래서 많은 경우 방치가 아니라 준비의 시간이 됩니다. 그래서 오늘은 이렇게만 쓰고 싶습니다.

"더 슬퍼해. 다 슬퍼할 때까지 기다릴게."

어떤 슬픔 하나가 소리 없이 지나가고 있습니다. 불과 24만 표 차이 패배. 그 슬픔을 우리는 무어라 불러야 할까요. 작고 하얀 개 ‘딩딩’의 사진을 오래 들여다보는 오후입니다.

[박진성 시인]

세종 출생. 고려대학교 서양사학과 졸업. 2001년 《현대시》로 등단. 시집 《식물의 밤》등 다수. ‘젊은 시인들이 뽑은 올해의 시인상 2014’ 등 다수 수상.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창작지원금 4회 수혜.

출처 :

굿모닝충청(http://www.goodmorningcc.com)

- 故 박진성 시인 페이스북 https://m.facebook.com/poetone78

- 故 박진성 시인 블로그 https://blog.naver.com/poet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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