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연애인 이야기/스포츠 인물

NBA 레전드 빌 러셀 별세 사망이유 나이 88세 보스턴 우승 수비수 평가

by - 하루살이 - 2022. 8. 2.
728x90
반응형

미국프로농구(NBA)의 전설적인 센터 빌 러셀이 88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ESPN 등 미국 주요매체들은 1일(한국시간) 러셀의 사망 소식을 일제히 보도했다. 이어 앞서 러셀의 부인인 지니 러셀은 SNS를 통해 “남편이 평화롭게 눈을 감았다”고 글을 올렸다.

빌 러셀 프로필

보스턴 셀틱스 No. 6

윌리엄 펠턴 러셀

William Felton Russell

출생

1934년 2월 12일

루이지애나 주기

루이지애나 주 먼로

사망

2022년 7월 31일 (향년 88세)

워싱턴주 주기

워싱턴 주 머서아일랜드

국적

미국 국기

미국

출신학교

샌프란시스코 대학교

신장

208cm (6' 10")[1]

체중

100kg (220.5 Ibs)

윙스팬

224cm (7' 4")

포지션

센터

드래프트

1956 NBA 드래프트 1라운드 2순위

세인트루이스 호크스 지명

소속 팀

보스턴 셀틱스 (1956~1969)

지도자

보스턴 셀틱스 감독 (1966~1969)

시애틀 슈퍼소닉스 감독 (1973~1977)

새크라멘토 킹스 감독 (1987~1988)

등번호

6번 - 보스턴

미국의 농구인. NBA의 명문 구단 보스턴 셀틱스에 11회 우승과 NBA 8연패라는 전무후무한 기록과 어마어마한 영광을 안겨준 전설 중의 전설.[2] 우승이 최고의 지상과제인 프로스포츠, 그 중에서도 선수 평가에서 우승이 차지하는 위상이 어마어마한 NBA의 역사를 통틀어 그보다 더 많은 트로피와 반지를 얻은 선수는 아무도 없다. 심지어 마이클 조던[3] 마저도.

역대 NBA 선수 서열 논쟁에서 마이클 조던 다음에 위치하는 것으로 여겨지는 센터들 중 카림 압둘자바, 윌트 체임벌린과 함께 필두로 불린다.[4] '센터 놀음' 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센터의 비중이 높은 스포츠가 농구이며, 따라서 센터 포지션은 NBA의 모든 포지션을 통틀어서도 가장 두터운 레전드들의 숫자를 자랑한다. 하지만 빌 러셀은 그 모든 위대한 센터들 중에서도 역대 최고의 센터 중 한명으로 손꼽히며 압둘자바, 체임벌린과 함께 그 지분을 삼분하고 있다. 비록 개인 득점력은 그 둘보다 확연히 떨어지지만, 압도적인 수비력과 팀플레이 능력을 기반으로 11개라는 독보적인 개수의 우승반지를 획득할 수 있었다.[5]

그야말로 위대한 승리자라고 부를 수 있는 전설 중의 전설. 역사상 최고의 선수 중 한명이다.

NBA-Champion NBA 챔피언 11회 (1957, 1959-1966, 1968-1969)

NBA 로고 정규시즌 MVP 5회 (1958, 1961-1963, 1965)

NBA 로고 올-NBA 퍼스트 팀 3회 (1959, 1963, 1965)[7]

NBA-Allstar2021 NBA 올스타 12회 (1958-1969)

NBA-Allstar2021 NBA 올스타전 MVP (1963)

NBA 로고 올-NBA 세컨드 팀 8회 (1958, 1960-1962, 1964, 1966-1968)

NBA 로고 NBA 올-디펜시브 퍼스트 팀 1회 (1969)[8]

NBA 로고 NBA 올해의 리바운드왕 4회 (1958-1959, 1964-1965)

NCAA 로고 NCAA 챔피언 2회 (1955-1956)

NCAA 로고 NCAA 토너먼트 MOP (1955)

HOF-Logo 네이스미스 농구 명예의 전당 헌액 (1975)

러셀은 가까이로는 그와 함께 플레이했던 선수 뿐만 아니라 까마득한 후배들에게까지 엄청난 존경을 받고 있는데, 인종차별의 잔재가 상당수 남아있었던 1950~1960년대에 선수 생활을 했었고 특히나 그가 선수 생활을 보낸 보스턴은 대학생활을 보낸 자유로운 분위기의 서부 샌프란시스코에 비해 상대적으로 인종차별이 심했다. 실제로 1968년 보스턴 교외의 레딩으로 이사갈 적 이웃들은 탄원서를 내거나 공동으로 러셀이 살 집을 사려고 했고, 백인우월주의자가 들어와 그의 침대 한가운데에 똥을 싸놓은 행위는 유명하다. 이외에도 인종차별에 대항해서 셀틱스 백인 동료들은 한데 뭉쳐 러셀을 옹호해서 집단행동이나 성명을 내는 일이 잦았다. 또한 1961년 켄터키 주 렉싱턴에서 열렸던 세인트루이스 호크스와의 친선경기 때 그는 흑인 동료들과 함께 식당에서 내쳐지자 출전까지 거부했으며 백인 스포츠 기자들이 동료 톰 하인슨에게 "빌 러셀은 흑인이니 MVP도 못 받을 거다"라고 악담을 퍼붓기도 했다.[34] 이런 환경에서 오직 인품 하나로 백인 감독과 백인 위주의 팀원들의 신뢰를 얻었으며 은퇴 이후에도 이는 여전하다. 많은 선수들이 심지어 마이클 조던보다 빌 러셀을 역대 최고의 선수라고 주장하는일이 비일비재하기 때문. 당연하지만 이런 주장을 했던 선수들은[35] 1960~1970년대 그와 함께 했던 선수들이나 감독, 기자 등 전문가들의 비중이 높으며 조던의 우세를 주장하는 선수, 전문가들은 이보다 후인 1990~2000년대 현업에 종사했던 경우가 많다.

728x90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