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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진 직업 - 조선시대 직업

by - 하루살이 - 2022. 3.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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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진 직업

전차 운전사 : 대한제국 말기, 서울에 전차가 등장했습니다. 1966년 전차 운행이 중단되면서 전차 운전사라는 직업은 역사의 뒤안 길로 사라졌죠. 그 전까지만 해도 인기있는 직종 중 하나였다고 합니다. 이 직군이 가장 호황기였던 1930년대는 전차 수가 250대가 넘어 갔고 하루 이용 승객이 약 50만 명에 이르렀다고 합니다.

50년대까지 전성기를 누비다가 50년 후반부터 자동차, 버스가 급증하면서 점점 뒷 전으로 밀려났고 이윽고 68년도에 철거되기에 이릅니다. 전차 운전사와 더불어 전차 수리공, 조립공 등등 관련된 직업들도 자취를 감추게 되었습니다.

영화 간판 제작자: 1970년에서 1980년대까지는 국내 영화 산업이 태동하는 시기였습니다. 그 때 당시 영화 간판을 그리고 제작하는 사람들의 몸값이 어마어마했었는데요. 간판 화가들의 경우 당시 기준 많게는 300만 원까지도 호가를 부르며 작업을 수행했다고 합니다. 간판 하나를 제작하는 데 소요되는 시간은 평균적으로 약 10일 내외였으며 1990년대 전 까지는 일감이 정말 많았다고 하는데요.

90년대 이후로는 프린트 기술이 발달함에 따라 간판의 형태가 달라지게 되었고 그 결과 인쇄기술을 접목시킨 플렉스 간판이 그림 간판을 대체하게 되었습니다. 손으로 그리는 것보다 퀄리티가 좋고 시간과 비용면에서도 이점이 많았기 때문에 영와 간판 제작자의 일감은 줄어들게 되었고 자연스럽게 사라진 직업이 되었습니다.

버스 안내양 : "오라이!'라는 외침은 우리 부모님들에게는 익숙한 문장일 겁니다. 반면 MZ세대에게는 영화나 드라마 속에서나 접할만한 외침이죠. 영화 속에서 보면 발디딜 틈이 없는 버스 안에 어떻게든 비집고 사람을 다 태우고 자신까지 올라타 버스 문을 닫는 버스 안내양은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곤 하는데요.

당시 수도권을 중심으로 버스가 증가하였고 버스 안내양 제도가 본격화되자 수많은 젊은 여성들이 시골에서 일자리를 찾아 상경했다고 알려지고 있습니다. 그 당시 기준으로 중반까지는 9급 공무원보다 월급이 높았다고 하니 여성의 입장에서 볼 땐 나쁘지 않은 직업이라고 볼 수 있었겠죠.

미싱공 : 1970년대는 대한민국의 본격적인 산업화가 시작되던 시기였습니다. 이에 따라 수많은 직업들이 생겨났었고요. 그 중 대표적인 직군이 미싱공과 방적공 분야입니다. 1970년대 60만 명이 넘어가는 여성들이 경공업 분야에서 재직했다는 것을 보면 당시 얼마나 큰 산업이었는 지 가늠해 볼 수 있습니다.

그 때 남성들에게는 미싱공으로 재직하는 여성분들이 매우 선호되는 대상이었습니다. 경제적으로 어려웠던 시절 먹고 살기 급급하던 때에 미싱 기술이라는 건 넉넉한 경제력을 보장해 주는 것을 의미했기 때문이죠.

전화 교환원 : 지금처럼 통신 산업이 발달하기 이전, 과거에는 전화기를 사용할 때 일일이 다이얼을 돌려가면서 신호를 연결해 줬어야 합니다. 신호를 연결하고 교환원이 응답을 하면 고객 요청에 맞춰 상대 가입자의 회선에 플러그를 이어주는 방식의 공전식 전화기였죠. 그 때는 지금처럼 전화기를 쉽게 구입할 수 없었습니다.

전화 가입을 신청하면 보통 한 달은 기본이요, 길게는 3개월 까지도 기다려야 전화를 놓을 수 있던 시절이었죠. 유심칩과 공기계를 구매해서 하루만에 셀프로 개통하는 지금 시대에는 상상할 수도 없는 일입니다. 전화가 보급되기 시작하면서 전보가 자리를 잃게 되었고 이어서 자동식 전화기와 전자식 전화기가 발전 및 확산 됨에 따라 전화 교환원은 자연스럽게 사라진 직업이 되었습니다. 재밌는 건 이 과정에서 생겨난 직업이 텔레마케터, 고객상담원, CS전문가 등이라는 점입니다. 요즘에 사라진다고 난리가 난 직업이죠?

조선시대 직업

여리꾼 : 호객행위를 하면서 구매를 유도하고 가게 주인에게 보상을 받았던 직업입니다. 지금으로 치면 일종의 영업직이죠? 당시에도 상품만 파는 것이 아니라 토지나 가옥, 금전 대차 등의 금융업도 병행했다고 알려지고 있습니다.

전기수 : 지금으로 따지면 성우에 가깝다고 할 수 있겠네요. 소설이나 시를 감미롭게 읽어 주고 보수를 받는 직업이었습니다. 조선시대 한 전기수가 너무 리얼하게 낭독하는 바람에 관객의 감정선을 건드려 칼에 찔렸다는 유명한 일화가 전해지고 있습니다. 조선시대 소설이 상업화에 성공하는 데는 전기수에 영향이 컸다는 담론이 있습니다.

문안비 : 정초에 새해 인사를 하기 위해 집 곳곳을 돌아 다니며 대신 인사를 전해 드리던 하인입니다. 노비의 신분이었기 때문에 직업이라고 지칭하기는 애매한 면이 있지만 일단 맥락상 직업으로 분류했습니다. 당시에 여성의 바깥 출입이 자유롭지 않았다는 점을 고려해 볼 때 의외의 직업이었다고 볼 수 있겠네요.

매품팔이 : 쉽게 말하면 탱커입니다. 다른 사람이 맞아야 할 매를 대신 맞아 주고 돈을 받는 직업이었죠. 흥부전에 보면 흥부가 일정의 보수를 받고 매를 대신 맞는 일화가 나옵니다. 고전에도 실릴 정도면 당시에는 흔하게 볼 수 있는 직업이 아니었나 미뤄 짐작해 볼 수 있겠습니다.

곡비 : 장례를 치를 때 울음 소리가 끊이지 않도록 분위기 조성을 위해 계속 소리내어 우는 일을 하고 그 대가로 보수를 받았던 직업입니다. 노비 신분임에도 불구하고 품삭을 지급했던 것을 보면 최소 조선 중기 이후에 생겨난 직업이 아닐까 예상됩니다.

매분구 : 지금으로 치면 뷰티 방문판매 영업사원입니다. 집집마다 방문하면서 화장을 해주고 화장품을 판매하던 직업이었죠. 조선시대에도 이런 직업이 있었다는 게 정말 신기하네요. 형태만 달라졌지 그 때나 지금이나 크게 달라진 건 없어 보입니다. 매분구들이 당시 유행하는 화장 트렌드를 주도하는 세력이었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추노객 : 단어에서 느낄 수 있듯이 도망 친 노비를 쫓아가서 잡아오는 대가로 보수를 받는 직업입니다. 일명 노비 사냥꾼이라고 불리는 추노객은 고종 시절 노비세습법이 폐지되면서 점차 수요가 급감하다가 갑오개혁 후에는 사실상 노비제도가 사라지면서 사라진 직업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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